담쟁이 담쟁이 이승애 우리는 담벼락을 타고 있어요. 나무와 바위를 오르기도 해요. 매일 안간힘을 다해 오르다 보면 간혹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나 바위틈에 끼여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결코 낙담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럴수록 우리에겐 삶의 의지가 펄펄 살아나지요. 모두 함께 어깨.. 문예지 발표작 2019.02.17
갈대 갈대 이 승 애 무심천 가녘이 연초록빛 풀잎 향연에 함뿍 부풀어 올랐다. 그 감흥에 나도 도취되어 도란대는 내를 따라 한가로이 걸어본다. 가슴이 애초롬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물결치는 푸른 생명 위로 뻘쭘하게 서 있는 묵은 갈대숲이 발목을 잡는다. 넉장거리한 어미의 갈댓잎 사이.. 문예지 발표작 2018.04.17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 이승애 천지개벽할 일이 생겼다. 한적한 산골 마을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더니 기계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신도시를 만든다고 하였다. 급기야 산과들이 뭉개지고 죽음의 냄새가 산야를 뒤덮었다. 생명이 무참히 죽어간 자리엔 고층 아파트와 넓고 탄탄한 도로가 만들어졌.. 문예지 발표작 2018.01.03
연꽃밭에서 연꽃밭에서 이승애 넘실대는 푸른 잎 사이로 보동보동한 꽃송이들이 나래처럼 펼쳐져 있다. 햇살마저 사알사알 내리는 곳, 연의 무리를 따라 걷는다. 진자리에서 조차 환한 미소를 짓는 천진한 얼굴에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코를 대고 그들의 체취를 맡는다. 향긋한 냄새가 내 어.. 문예지 발표작 2018.01.03
따뜻한 눈으로 그려낸 백제 역사의 열린 교과서 - 이방주 선생님의 『가림성 사랑나무』를 읽고- 따뜻한 눈으로 그려낸 백제 역사의 열린 교과서 - 이방주 선생님의 『가림성 사랑나무』를 읽고- 이승애(수필가) 선생님의 열정과 땀으로 빚은 『가림성 사랑나무』가 탈고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처음 만나기 전인 2008년부터 산성과 산사를 답사하고 있었다. 2014년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 그룹명/2017년 창작수필 2017.09.11
쥐잡기 쥐잡기 이승애 싱크대 서랍을 여는 순간 놈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뜻하지 않게 마닥뜨린 두 눈빛은 놀라 당황한 빛이 역력하였지만, 놈은 나와는 달리 담담해 보였다. 옴짝달싹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이 서늘하게 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자지러지듯 요동치는 심장박동, 후들거리는 다리,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망연히 서 있다 슬그머니 서랍을 밀어 넣었다. 정신을 차리자 후회가 밀려왔다. 그토록 잡으려고 애쓴 놈이 코앞에 있었는데 모르는 척 눈감아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숨을 고르고 빼꼼히 서랍을 열었다. 놈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놈과 은밀한 동거가 시작된 건 3주 전이다. 발단은 이랬다. 전기가 고장이 나서 전기 수리공을 불렀는데 그들이 현관문을 닫지 않은 틈을 타 집 주변.. 문예지 발표작 2017.06.21
꽃이 피려면 꽃이 피려면 이승애 대지의 숨소리가 나긋나긋하다. 아니 연인의 고백처럼 달콤하다. 온 누리가 속삭여대는 원시적인 언어에 귀 기울이다 옴팡 빠져버린 오후, 솜사탕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제비꽃, 민들레, 별꽃, 현호색, 들꽃 옹알이에 취해 걷다가 그만 산모롱이 공사현장까지 가고야 .. 그룹명/충청투데이 2017.04.11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이승애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포르투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를 펴들었다. 그는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인간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사라마구는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그룹명/충청투데이 2017.03.13
손 손 이승애 오른손바닥에 콩알만한 혹이 생겼다. 잠시도 쉬지 않던 손이 더는 버틸 수가 없었는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하였다. 의사는 손을 너무 혹사해 인대 손상이 심하다고 하였다. 수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수술실에서 나온 내 손은 하얀 붕대로 동여맨 채 신음하고 있었.. 문예지 발표작 2017.02.14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의미 이승애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 하나쯤은 지고 살아간다. 아니 십자가라는 이정표를 따라 산다고 할 만큼 삶과 필연적인 관계에 있지만,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십자가가 고통과 실패, 절망과 수치, 죽음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 문예지 발표작 201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