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온 천지가 신록으로 뒤덮인 싱그러운 오월이다. 이 언덕 저 언덕에서 달려오는 아까시꽃 향기는 영원히 젊음을 간직할 것 같은 안정감과 희망을 준다.
초등학교 시절,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은 학교수업이 끝나는 대로 소 한 마리씩 끌고 풀밭을 찾아나서곤 하였다. 단골로 정해진 곳은 마을에서 십여 분 떨어진 냇가 옆 풀밭이었다. 그곳은 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소와 아이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소를 적당한 장소에 매어놓고 풀을 뜯게 하고는 아까시나무 그늘 아래 눕곤 하였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신록 사이로 번지는 아까시꽃 향기가 철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렸다. 그러면 너도나도 물가로 달려가 머리를 감았다. 머리카락이 고실고실 말라가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까시 나뭇잎 줄기로 서로의 머리를 말았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아이들 머리는 곱슬머리가 되어 한결 성숙해 보였다.
오늘도 아까시꽃 향기에 취해 미장원을 찾았다. 산뜻해진 모습이 흡족하다. 향기는 후각을 통해 영혼을 자극한다. 난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누군가를 미워했으니 꼬리꼬리한 냄새를 지녔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누군가를 사랑했으니 달콤한 냄새도 지녔을 것이다.
사람의 향기는 언어와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고 사회적 지위나 명예가 높다 하여도 영혼이 맑지 않으면 좋은 향기를 낼 수 없다. 탐욕의 악취는 이웃의 삶을 괴롭게 한다. 반면 배려의 향기는 이웃을 행복이란 이상향으로 인도한다. 아울러 이웃에게는 삶의 윤기와 흥취의 샘물이 되는 것이다.
지인 중에 늘 찔레꽃 향기가 나는 분이 있다. 어느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장소에 있든 항시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대하니 언제나 부드럽고 훈훈하다. 몇 년 전 허리 수술을 하여 간혹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성당 일이라면 먼저 달려와 일을 한다. 늘 남이 일하기 좋도록 준비해주는가 하면 남이 정리하지 못한 일을 말끔하게 마무리해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자랑하거나 생색내는 일이 없다. 혹여라도 누군가 남을 흉보거나 비난하더라도 동조하거나 곁들여 말하는 법도 없다.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고,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은 도맡아 한다.
며칠 전에는 성전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온종일 초를 만들고 있었다. 끼니까지 거른 채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도 서둘러 일을 마치고 뒷정리를 도왔다. 온종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해서인지 그분은 연신 허리를 두드려댔다. 그 모습이 짠해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 드리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서둘러 집으로 가지 않고 다음날 있을 행사 준비까지 마쳤다. 피곤함에 절어 귀찮을 만도 하건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분의 얼굴은 마치 하얗게 핀 찔레꽃처럼 맑고 청아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꽃향기와 같지 않다. 오래도록 남아 주변 사람들을 착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진다. 난 그 향기가 그리워 오늘도 사람의 숲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