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세상을 꿈꾸다
새해가 되니 축하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어온다. 한 사람 한 사람 축하의 글도 방법도 다르지만, 모두가 나의 발전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조용한 창가에 앉아 벗들과 지인들에게 새해 메시지를 보낸다. 작년 한 해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사회, 정치, 경제, 개인적인 신변 문제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올해는 더 큰 희망을 품어본다.
2012년 12월 21일은 마야 달력상 지구 종말론이 거론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일부 젊은이들은 쾌락적이고 소비 지향적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정치, 사회적 불안정은 심한 갈등을 초래했고, 물가상승과 경제 위기는 이웃에 대한 냉대감과 무관심을 증폭시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골이 깊어질수록 자살이 늘고, 범죄는 증가하였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도 취업하기가 어려워 4학년을 모두 마치고도 졸업유예 제도를 활용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친구 딸도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유망한 자격증을 세 개나 취득하였으나 졸업유예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곳곳이 병들어 신음하는 세상 안에 서 있는 나 자신도 안정을 취할 수가 없다. 친구들도 지금쯤이면 아이들을 키워놓고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취미생활을 할 때이지만 아직 자녀 뒷바라지에 직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가슴앓이 하는 이 세상이 언제쯤 밝아질 수 있을까?
문명은 발달하고 각종 기술은 발달하여 인간의 수명도 연장되고 생활의 편리함은 많아졌지만, 행복지수보다는 불안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만족하지 못하고 과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원주민 혹은 인디오들은 지나친 욕심을 부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그날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감사함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간단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요, 인생의 낙오자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안심이 되고 남들보다 좋은 직장과 결혼을 해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자녀를 다그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나친 욕심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특기나 적성과 상관없이 일등주의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따뜻함과 사랑이 없다. 그래서 요즘엔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오지 않았겠는가.
요즘 모 방송국에서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오직 시험, 수능이라는 목표물을 향해 뛰어갈 뿐이다. 학교의 진정한 역할은 상실되고, 몇몇 부모들의 치맛바람에 교사들이 흔들리고, 학생들은 입시라는 감옥에 갇혀 아픈 삶을 살고 있다. 내 진로에 방해된다면 친구의 것도 빼앗아 올 수 있고, 친구와 결별할 수도 있다. 꿈이 없는 그들의 세상은 암울하고 쓸쓸하다. 시 한 편 읽을 수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어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들은 권력다툼에 민생의 안정엔 관심이 없고, 사회는 점점 극단주의로 변화되고 있다. 이거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상엔 중간이 없다. 이렇게 살다 보면 모두가 괴물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경제력이 없는 노인은 증가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2040년 이후엔 젊은이들보다 노인의 수가 많아져 부양하는 사람의 어깨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헌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현대판 고려장이 고개를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제는 우리가 인간의 참된 본질로 되돌아갈 때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내 이웃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남이 잘되면 함께 기뻐하는 세상이 되길 빈다.
지인들과 벗들이 보내온 새해 메시지처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