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창작수필(신호등)

식당에서

이승애 2015. 1. 7. 22:44

식당에서

 

 

바람이 스칠 때마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양지바른 언덕엔 풀잎들이 몸을 흔들며 소곤대고, 무심천은 서로의 몸을 비비며 유유히 흐른다. 봄볕 유혹에 느슨해진 글쟁이들은 한껏 부푼 마음에 점심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식당은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깔끔한 이미지를 풍겼다. 몇몇은 순두부찌개를 시키고, 몇몇은 청국장전골을 시켰다. 청국장이 끓기 시작하자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잔뜩 부푼 기대감에 한입 맛을 보니 청국장 특미 대신 시큼한 쉰 맛이 입안을 불쾌하게 한다. 종업원을 불러 주인장께 맛을 보이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녀는 효소로 맛을 내기 때문에 어느 땐 효소가 많이 들어가 새콤한 맛이 강할 수 있다는 말을 던지곤 휭하니 나가버리고 말았다. 식당 측 의견을 존중해 몇 입 먹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에 또다시 종업원을 불러 맛의 원인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녀는 불쾌한 태도로 똑같은 말만 반복할 뿐 별다른 조치를 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먹을 수 없는 음식 앞에서 망연자실 앉아 있다 부아가 치밀어 종업원을 불러들였다. 이번엔 실장이라는 자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로 꼬투리를 잡는 취객 대우다. 그것도 모자라 고급 요리를 공짜로 탐하는 파렴치한 무리로 모는 것이 아닌가. 그 해괴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고조되었다. 결국 높은 언성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봄바람에 설렜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맛있는 점심을 기대했던 우리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쾌한 감정만 얻고 말았다. 종업원과 관리자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우리 의견은 파리똥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무례함에 고조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갈한 식당의 이미지와 자긍심에 가득 찬 직원들의 친절, 그것은 허식에 불과했던가. 무공해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만용을 부린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들이 예쁘게 차려입은 유니폼은 신용을 지키겠다는 상징이요, 그들의 아름다운 미소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표현이 아니던가. 만약에 그들이 본분을 지켰다면 설령 우리가 맛의 본질을 잃은 시큼한 청국장을 먹었다 한들 씁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틀 속에서 상대를 보고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버리거나 수정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 그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그는 깊은 동굴 속에 갇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생각의 키는 더는 자라지 않아 편견과 오류에 빠지고 말리라. 종업원이나 관리자의 그릇된 행동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사고방식과 다른 사람이 문제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한쪽으로 고정된 시선을 조금만 돌려 긍정적인 사고로 문제를 바라보았다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쉽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어찌 사람이 모두 같을 수가 있겠는가. 아롱이다롱이 모여 저마다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는 것이 세상이거늘. 사소한 일로 시비 다툼할 일도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시비다툼도 적어지리라. 현대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그래서 아무 때나 울근불근 성미를 부리다 기어이 사단을 내기도 한다. 오늘 나는 칠천 원짜리 청국장으로 사람의 도리를 배운다.

봄이다. 온 천지가 생명을 꿈꾸며 약동하고 있다. 나도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또 다른 소통 법을 배워보리라.

 

 

201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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