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창작수필(신호등)

어머니와 수의

이승애 2015. 1. 7. 22:06

어머니와 수의

 

 

모처럼 휴일을 맞아 옷장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방을 깨끗이 닦고 차곡차곡 쟁여 있던 옷들을 끄집어내니 산더미 같다. 어머니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나는 그동안 확인하지 않고 사들인 결과의 노출에 미안함을 느껴 괜스레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어머니께선 허허 웃으셨다. 그러다 한쪽에 곱게 싸놓았던 수의가 어머니 눈에 띄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수의만큼은 눈에 띄지 않게 하려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담담하게 수의를 하나하나 풀어 살펴보셨다.

어머니께서 수의를 맞추신 것은 20여 년 전이다. 앞으로 살아가실 날이 짧아지자 자식에게 누가 될까 손수 수의를 마련하시고자 하셨다. 자식된 도리로 그 뜻을 받아들이기는 떨떠름하니 속이 편치 않았다. 아직 죽음이 코앞에 닥친 것도 아닌데 서둘러 수의를 마련하시는 것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당당한 선언처럼 느껴져 슬픔이 북받쳤다. 어머닌 수의를 미리 맞추어 놓으면 더 오래 산다는 얘기가 있단다. 그러니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허탈함을 위로하셨다. 마음을 다잡은 우리가 기왕이면 제일 좋은 안동포로 맞추시라고 돈을 마련해 드렸지만, 부담이 되셨는지 값이 싼 수의로 마련하셨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좋은 것 하나 먹지도 입지도 않으시고 아끼시더니 이번에도 자식의 가벼운 주머니를 살피신 것이다. 목이 멘 자식들이 볼멘소리를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수의를 소중한 물건으로 언제나 정성스럽게 다루었고 이사할 때도 손수 챙겨 들고 다니셨다. 그 모습을 뵐 때마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식들을 생각하여 싼 것으로 맞추고 그것을 아끼시는 정성은 늘 내 마음을 찡하게 하였다. 간혹 어머니께서 수의를 꺼내 보실 때마다 짐짓 화난 듯우리를 불효로 만드니 좋으시냐?’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시며 내가 입고 갈 옷을 미리 마련해 놓으니 좋기만 하구나. 언제 가도 부담되지 않고.”하신다.

정신 차릴 새 없이 질곡의 삶을 살아오느라 등은 굽고, 뼈들은 다 닳아 거동마저 어려우신 우리 어머니이지만, 오로지 자식의 안위만을 걱정하신다. 이 수의는 단순히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줄 옷의 의미를 넘어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간 살아오신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에는 당신의 몸마저 기증서약을 하였다. 펄펄 뛰며 반대하는 자녀 앞에 어머니는 어진 말로 다독였다.

이 세상에 온 만큼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니?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연구할 수 있도록 내주는 것도 이 세상에 왔다가는 덕이 아니겠냐.”라시며 몇 달을 두고 오히려 우리를 설득하였다.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았지만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평생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고생하신 어머니의 작은 몸이 실험용으로 해부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집요한 설득에 우리는 동의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늘 죽음을 준비하며 사시는 어머니의 삶은 군더더기가 없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봄 햇살처럼 따사롭다.

어머니를 본다. 강인하지만 한없이 여리고 고운 마음을 지닌 어머니가 앉아 계신다. 어느 땐 소녀 같고, 어느 땐 성인 같은 우리 어머니가 이승에서 마지막 입으실 수의를 정성껏 함에 넣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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