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정상에서
외출하고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잔뜩 구부린 채 책을 읽고 계셨다. 나는 마치 어머니의 윗사람인 양 잔소리를 해댔다.
“어머니 왜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보세요? 의자에 앉아서 보시라고 했잖아요.”
“네가 사다 준 탁자를 사용하면 허리가 더 아프단다.”
구부러진 허리를 펴시는 어머니의 모습엔 슬픔이 어려 있다. 어머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뱉은 발칙한 발언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다가가 앉았다.
어머니의 척추는 오랜 세월 과한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은 추간판 탈출과 요추관 협착증, 퇴행성관절염이라는 요상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병은 어머니의 일상사에 사사건건 파고들어 간섭하니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일상의 끈을 잡고 계신다. 그중에서도 성경을 읽거나 책을 읽는 일을 거르지 않으시니 책 읽기에 편하다는 행복탁자를 사드렸다. 행복탁자는 키 높이에 맞춰 제작된 작은 탁자로 거실 소파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상판을 올려 독서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간단한 간식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거금을 들여 마련한 것이다. 효도했다는 나의 자부심과는 달리 어머니께서는 며칠 사용하시더니 불편을 호소하며 구석으로 밀어 놓으셨다. 이번엔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 책을 보시면 더 나을까 싶어 침대형 의자를 사드렸는데 그마저 불편하시다고 치워버리셨다. 효도 한번 해 보겠다고 호기를 부린 것이 낭비가 되고 말았다. 어머닌 다시 앉은상을 선택하셨다. 하지만 두어 시간 구부리고 책을 읽으시면 온몸이 저리고 아파 한참을 고생하시곤 한다.
며칠 전엔 무엇인가 열심히 만드시는가 싶더니 인조 속바지랑 속치마를 꺼내 놓으셨다.
“승애야! 이거 한 번 입어 보거라.”
“엄마! 몸도 불편하신데 이런 건 왜 만드셨어요?”
고마운 마음을 숨기고 주제넘은 지청구를 놓았다. 어머닌 그런 딸의 오만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 다독이듯 손수 옷을 입혀주셨다. 옷은 내 몸에 꼭 맞았다. 이 옷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앉았다 누웠다 하셨을까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몇 달 전부터 재봉틀이 시원찮으니 고쳐달라고 부탁을 해도 못 들은 척 외면을 했었다. 혹여라도 편치 않은 몸으로 재봉질하다 더 큰 병을 얻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었지만, 늘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로서는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랠 생각이셨던 것이다. 하지만 끝끝내 외면하는 딸 때문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봉틀을 몇 배나 용을 쓰며 사용하시곤 하였다. 이번 옷을 만들면서도 수없이 끊어지는 실과 부러지는 바늘을 갈아 끼우며 온갖 고생을 다 하셨을 것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누우신 어머니 입에선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온다. 딸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은지 무릎과 허리를 두드리시는 손엔 힘을 가하지 않아 두드리는 시늉뿐이다.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나섰다. 뻣뻣해진 몸을 마사지해드리며 인제 그만 편히 사시라고 말씀드리니 손사래를 치시며 괜찮다고 하신다.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는 희망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결연의 자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란을 일으키는 심장 때문에 약을 한 움큼씩 드시면서도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홀히하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보면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이 떠오르게 된다. 노인은 황황한 바다에서 돛새치와 사흘간 사투를 벌이며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보여주었다. 어머니께서 일상이라는 생의 뜰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삶에 대한 예의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가늘어진 다리는 근력이 떨어져 지탱하기 어려운데도 청소만은 당신이 꼭 하시겠다고 우기시는 어머니가 그렇고, 아침마다 동동거리는 딸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시는 어머니가 그렇다.
나는 언제쯤 어머니의 크신 사랑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툭하면 몸이 불편하다고 구들장 지기가 십상이요, 할일은 늘 저만치 미뤄놓고 요 핑계 저 핑계나 대는 게으른 존재다. 그뿐이랴 일이 조금만 많아져도 입을 툭 내밀고 힘들다고 엄살이나 대는 쫌생이다 보니 내 자리는 늘 정상을 오르다 만 언덕배기다. 올여름엔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속바지와 치마로 더위를 이겨낼 요량이다. 면처럼 칙칙 감겨 불편을 주지 않으니 입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칠 것이다. 오늘도 움츠리지 않고 앞을 향해 힘차게 내딛는 어머니를 향해 뜨거운 갈채를 보내며 나도 씩씩하게 발을 내딛는다.
2014. 2.
'그룹명 > 창작수필(신호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존심 때문에 (0) | 2015.01.07 |
---|---|
사랑이 가득하신 아버지 (0) | 2015.01.07 |
어머니와 영화관엘 가다 (0) | 2015.01.07 |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0) | 2015.01.07 |
어머니와 수의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