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며칠 동안 분주하게 보냈더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따뜻한 물에 목욕한 후에도 피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얼굴은 까칠하니 영 볼썽사납다. 평소에도 못생겼다는 평을 받는 편인데 피곤에 전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눈가에 주름은 자글자글하고, 피부는 늘어지고 살이 너무 많아 이중 턱인데다 두꺼운 입술은 둔한 인상을 준다.
낯선 얼굴을 지우기라도 하듯 정성껏 마사지하고 영양크림을 듬뿍 발라 윤기를 주고 다시 얼굴을 본다. 주름이 강하게 들어온다. 어느 부분은 보기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흉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유난히 좁은 이마에 팔자모양의 주름은 자주 찡그려 생긴 것이고, 눈가에 그어진 금들은 속없이 웃어 생긴 것이다. 웃음으로 그어진 선들은 묘하게도 정감이 가고 편안하다. 그러나 코에서 입가로 흐르는 깊은 주름은 삶이 편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구난방으로 그어진 주름과 수많은 점 사이에서 슬픔을 느낀다. 얼굴을 문지르며 이리저리 잡아당겨 보지만, 문신처럼 자리 잡은 선들은 조롱하듯 선명하다.
수많은 주름은 인생길에서 만났던 아픔과 슬픔의 흔적이다. 스물아홉에 수녀원에 입회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 년 가까이 지속된 설사와 천식, 관절염이 생기는가 싶더니 갑상샘항진까지 찾아들었다. 그러나 수도생활 특성상 병원 출입이 어렵다 보니 증상에 맞게 처방을 받지 못해 약물 부작용까지 나타났다. 그런 상태가 몇 년 지속되다 보니 윤기 있던 얼굴은 푸석푸석하게 변하고, 머리는 한 움큼씩 빠져 성글어지고, 얼굴 윤곽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양쪽 턱으로 살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안구돌출로 말미암아 팽창했던 눈두덩이 그대로 늘어져 몇 겹으로 주름져 버렸다. 그러니 얼굴을 볼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한때는 겹으로 늘어진 눈덩이 주름을 없애기 위해 쌍꺼풀 수술이라도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인위적으로 째고 꿰매고 한들 아름다워 질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줄기처럼 뻗은 주름을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곤 한다. 주름은 삶과 비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나온 날처럼 앞으로도 고통과 갈등, 상처로 수많은 주름들이 내 얼굴을 차지하리라.
이제 반평생을 넘게 살았으니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원만치 않은 팔자타령만 했지 진정으로 내 삶을 윤택하게 가꿀 줄 몰랐다. 사회복지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 생각이 많이 빗나갔음을 깨닫게 된다. 복잡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가꿀 수 있었음을 왜 깨닫지 못하였는지. 어찌 나만 힘들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모든 인간이라면 겪으며 살아가는 과정이리라. 그럼에도 ‘나’라는 유기체에 보이는 강한 집착은 덜 성숙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오늘 유독 핼쓱한 내 얼굴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얼굴엔 나만의 개성과 취향과 정서가 담겨 있다. 못생겼다고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내 인생과 영혼이 담긴 그릇으로 소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생의 수련과 마음의 연마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왕이면 좀 더 품위 있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도록 노력하리라.
2013. 4. 15.
'그룹명 > 창작수필(신호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어감에 대하여 (0) | 2015.01.07 |
---|---|
발톱 (0) | 2015.01.07 |
자존심 때문에 (0) | 2015.01.07 |
사랑이 가득하신 아버지 (0) | 2015.01.07 |
어머니와 영화관엘 가다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