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엄지발가락이 욱신거리더니 급기야 벌겋게 부어오르고 염증이 생겨 걷기도 불편하고 씻기도 편치가 않다. 그러기를 보름 되었을까? 어머니께서 은근히 겁을 주셨다. “그거 혹시 큰 병이 아닐까?” 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발가락을 어루만지셨다.
그동안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별것 아니라고 무심하게 생각하였는데 어머니께서 걱정 어린 말씀을 하시자 가슴이 뜨끔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선생님에게 보이니 무뚝뚝하게 “염증이에요. 항생제 처방하리다.” 하며 싱겁게 가라고 한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론 돌팔이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주사 한 대 맞고 약을 지어와 며칠을 열심히 먹었다. 그러나 통증이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안 되겠다 싶어 꽁꽁 싸매어 놓은 붕대를 풀어 제치고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다. “혹시 발톱이 파고 들어간 것은 아니니?” 전등을 들이대며 손톱 깎기를 내미셨다. 처음엔 그렇지 않다고 우기다 퉁퉁 부은 발가락을 치켜들고 반신반의하며 짧은 발톱 끝을 간신히 쳐들어 깎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살 속을 파고들었던 ㄱ자 모양의 날카로운 발톱이 깎여져 나왔다. 그 순간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두 모녀는 어이없는 모습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얼마 전 발톱을 너무 짧게 잘라 제대로 자라지 않고 살 속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해 괜스레 항생제를 먹고 진통 소염제를 먹었던 것이다.
여러 날 끙끙대며 앓던 발가락과 엉뚱한 상상으로 고민하던 사건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버렸고, 시간에 풍화되어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둘째 발가락이 뜨끔뜨끔 쑤셔대더니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통증은 예전처럼 심하지 않았지만 온종일 종종걸음 치는 나에게는 영 편치 않은 일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깊숙이 파고드는 발톱을 잘라내니 편편하지 않았던 발에 화색이 돌았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발톱을 짧게 잘라 생긴 일이었다. 이렇게 뭔가 모자란 내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선 눈 멀쩡히 뜨고 같은 고통을 당하고서야 후회하는 버릇은 언제쯤 나아질는지 모르겠다고 잔소리를 해대셨다.
어느 날 문득 고통을 통해 눈 뜨게 하는 일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같은 삶이 반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익숙해진 습관에 의지해 산다는 것은 위험을 부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긴 여정을 걸어가기 위해선 구태의연한 산맥을 넘어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우리의 삶은 늘 새로운 그림을 그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닐런가. 그럼에도 같은 방법과 색으로 덧칠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왜일까. 이 그릇된 일을 반복해 저지르는 이유는 우매한 나의 습관적 메커니즘이 아닐는지. 잘못 자리잡은 습관은 실수를 유발하고 무사히 지나칠 일도 곱으로 겪게 하곤 한다. 하지만 실수를 반복한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고약한 버릇이 고쳐지기도 하고,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같은 잘못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소소한 일들이 큰일이 되고 무심코 넘긴 일들이 화근을 만들기 때문이다.
2014.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