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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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흉화복 변화가 무쌍한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 여정만은 쉽고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내 인생행로는 유독 수많은 사연과 고달픔으로 얼룩져 있다.
다섯 살 되던 해 옆집 사는 친구가 양잿물에 살구를 적셔 먹이는 바람에 반쯤 죽었다가 살아났다. 한창 커야 할 나이에 허구한 날 배를 움켜쥐는가 하면, 음식을 앞에 두고 눈만 껌뻑대기만 하고 먹지 못하니 부모님 마음은 늘 편치 않았다. 이런 딸을 위해 부모님께서는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조리 구해와 치료해 주신 덕택에 어려운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이날 이때껏 위장병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중학생이 되자 또 한 번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는 십여 리가 넘는 읍내에 있어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녀야 했는데 걷기엔 좀 벅찼다. 아침저녁으로 35인승 버스가 운행되긴 했지만,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밀고 당기고 하다 싸움이 일거나 낙오되는 이가 종종 발생하곤 하였다. 다행히 버스를 타게 되면 콩나물시루와 다름없어 숨도 편히 못 쉴 지경이었다. 그나마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숨이 차도록 뛰거나 캄캄한 밤길을 걷지 않아 다행이지만, 예고 없이 버스가 오지 않는 날이 허다하니 그것마저 편하게 이용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선 가난한 지갑을 털어 중고 자전거 하나를 마련해 주셨다.
어느 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맞은편 길에 불현듯 나타난 불빛이 지그재그로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성난 짐승처럼 달려들어 나를 덮쳐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땐 오토바이가 갸르릉 쉰 소리를 내며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주변엔 낯선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몹쓸 기계 덩어리를 밀쳐내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옆에는 사고를 낸 사람이 만취하여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당황한 나는 아저씨를 부르며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그는 실눈을 뜨고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억지로 일어섰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나의 행동을 말리며 어서 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 우매한 나는 고집을 부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나는 엄마를 부르다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의식은 제대로 돌아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 단짝 친구 숙이는 단단한 우정의 끈으로 나를 동이고 내 좌우를 오가며 부축하기도 하고 책가방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어린 인생에 끼어든 병이라는 녀석은 쉽사리 떠날 줄 몰랐다. 고등학생 땐 장기 하나가 만성적으로 괴롭히다 염증으로 발기된 채 잘려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병에게 뒷덜미를 잡힌 꼴이라니. 꼭 피다 만 꽃처럼 볼품없는 청소년기였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이 몹쓸 병의 행패에 시달리곤 한다. 그렇다 보니 뾰족뾰족 날이 서기도 하고, 좌절감에 주저앉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노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병이 아닌가 싶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고나는 병 때문에 앙다물어지기도 하고 좌절과 슬픔에 빠지기도 하지만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병을 앓다 보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욕심과 교만을 내려놓게 되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오십객이 되니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녀석에게 친숙함마저 느끼게 된다. 작년엔 몇 십 년을 소중히 다루던 팔뚝 뼈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주지만,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마저 참을 만하다. 이렇게 병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겸손해질 수 있도록 하고, 영혼이 붕괴하는 것을 붙들어 주기도 한다.
201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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