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발표작

냄새

이승애 2019. 4. 13. 23:18

냄새

 

이승애

 

냄새는 존재를 증명한다.

냄새 제거제 한 통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도 시치미를 뚝 뗀다. 벌써 열흘째 요지부동이다. 폭염에 뜨겁게 달아오른 차 안에서 천연덕스럽게 썩어 가는 망고라떼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문을 여는 순간 몰려오는 악취에 잔뜩 약이 오른 주인이 가만있을 리 없다. 물 한 동이를 겁 없이 들이 붓고 세제로 거품 세례도 해주었다. 뽀송뽀송하던 차 안이 질펀해져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도 냄새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이 시인님께서 오신다는 반가운 소식에 카페로 달려가 망고라떼를 샀다. 승용차 보조석에 놓고 오는데 느닷없이 장정 둘이 길 한복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급정거를 했다. 망고라떼가 가득 넘실대던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정성껏 준비한 사랑이 박살이 난 것이다. 교통사고는 모면했지만 가슴은 콩닥콩닥 두방망이질하고 머릿속은 개구리가 와글와글 울어댔다.

이 시인과 늦은 밤까지 회포를 푸는 사이 망고라떼는 도둑고양이처럼 내 애마의 속살까지 파고들어 급격히 썩어갔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고약한 냄새가 와장창 코를 파고들었다. 공장에서 나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애마는 솜털도 벗겨지기 전에 악취의 포로가 되었다.

악취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먹을 찬을 만들려고 냉장고 채소 칸을 열었다. 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 서둘러 내용물을 몽땅 꺼냈다. 십여 일 전에 사다 넣어두었던 부추와 상추, 고추, 오이가 짓물러 찐득한 진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엎친데 겹친다더니 악취가 온종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잔뜩 약이 오른 나는 냉장고를 벅벅 닦아내다 문득 내 안에도 이렇게 곯아 터져 악취를 풍기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내게로 향하자 부글대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냄새는 여러 가지 요인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적 조건이나 질병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직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풍겨야 하는 냄새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환경에서 발생하는 냄새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냄새는 참을 수 있지만 온전치 못한, 부정한 인간의 정신에서 나는 냄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부패한 인간의 냄새는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도 하고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몇 년 전 인연을 맺었던 공동체에 이러한 부류의 사람 몇몇이 있었다.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주변사람들을 오염시켰다. 처음엔 그 냄새의 진원를 모른 채 감염되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집단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그 속에 갇혀있던 냄새가 화산 폭발하듯 품어져 나왔다. 그들의 정신에서 나온 냄새는 오래도록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질투로 눈꼬리가 올라갈 때나 남을 흉보고 미워할 땐 구린내가 날 게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냄새 속에서 살아간다. 마음속에 어떤 것을 품느냐에 따라 좋은 냄새를 풍길 수도 있고,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

고약한 냄새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동차 청소 전문점을 찾아갔다. 그들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방법으로 과감하게 차 내부에 있던 부품들을 몽땅 들어냈다. 그러자 거무튀튀하게 상한 액체가 속살을 드러냈다. 그들은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속속들이 씻고 닦은 후 스팀살균과 특수 클리닝 약제로 말끔히 처리했다.

불쾌한 냄새로부터 해방된 애마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쑥한 자태로 은은한 향기까지 머금었다. 며칠 동안 최고점에 머물던 스트레스도 보통으로 돌아왔다.

한껏 멋을 낸 애마가 짙은 초목이 춤추는 길을 내달리고 있다. 욕심을 비워버린 내 안으로 햇살이 축복처럼 내린다. 썩은 망고라떼는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준 스승이 되었다.



수필과비평 19년 7월호


'문예지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다리에서 만난 피에타  (0) 2020.01.15
배나무밭에서  (0) 2019.04.13
방지턱  (0) 2019.04.13
담쟁이  (0) 2019.02.17
갈대  (0) 2018.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