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와 스킨답서스는 열애 중
수족관의 물을 갈아주기 위해 스킨답서스를 걷어내니 유유히 물속을 노닐던 구피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모습에 미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몇 달 전에 지인을 통해 분양받은 열대어 구피들의 물을 갈아주는 날이다. 처음으로 물고기를 기르게 된 나는 설렘과 반가움으로 할 일을 제쳐놓고 수족관가게로 달려갔다. 다양한 수족관과 물고기용품을 이것저것 만질락 거리다 조금 크다 싶은 수족관과 필요한 용품들을 구입하였다. 왠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청소 물고기도 종류별로 세 쌍을 사들고 와 정성껏 그들의 보금자리를 꾸며주었다.
한 달 남짓 지나니 구피가 새끼를 낳아 식구가 불어났다. 헌데 새끼들이 꼼지락거리며 오가면 큰 놈들이 꿀꺽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종이 다른 물고기들은 해코지를 하지 않는데 같은 종끼리 몹쓸 짓을 하는 것을 보니 괘씸하기도 하고 심란스러웠다. 며칠을 끙끙 앓으며 부하 통에 따로 격리시켜 놓았지만 영 마음이 불편하고 성가셨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큰오빠가 스킨답서스 한아름 가져와 수족관에 넣어주었다. 처음엔 수초도 아닌 일반 화초를 수족관에 넣은 것이 불안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살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킨답서스는 하얀 뿌리를 살포시 내리며 자리를 잡아갔고, 구피들은 새로운 환경이 마음에 드는지 한결 여유 있는 몸짓으로 노닐었다. 작은 녀석들에게 콕콕 쏘아대던 공격적인 행동도 없어졌고, 새끼들이 곁에 가도 꿀꺽 먹어버리지 않았다. 신기하도록 순해진 구피들은 제법 평화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스킨답서스도 뿌리를 길게 뻗어 얽혀 있는 모습이 멋지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어렸던 순도 초록을 넓혀가더니 방안 가득 싱그러움을 주고 있다. 어우릴 것 같지 않던 이 두 가족이 서로를 도우며 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들의 상생관계는 내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얽혀 부딪치고, 넘어지고, 상처를 내면서 살아간다. 나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를 따지고 타인으로 인해 손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느 땐 친절을 베풀었다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배신을 하기도 한다.
상생의 삶을 산다는 것은 조화롭고, 긍정적이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즉 남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고, 기쁨을 실천하며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지혜를 말한다. 헌데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얕은 생각과 행동은 오히려 내 자신이 정착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는데 방해가 되었다.
스킨답서스와 구피는 복잡한 관계의 형식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스킨답서스는 구피의 비릿한 살 냄새와 그들이 방출하는 배설물과 이산화탄소를 몸속에 받아들여 좋은 성분으로 변화시켜 나누어주었다. 구피들은 종족이 다른 이방인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안식처로 삼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처럼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아는 태도를 가질 때 너와 나는 아름다운 관계를 갖게 될 것이고,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묵묵히 참고 받아들일 때 관계는 형성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스킨답서스와 구피는 지금 열애중이다. 작은 몸을 서로 의지한 채 각자의 정화작용을 하면서 행복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2012년 9월 푸른솔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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