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족, 또 다른 불평등
K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걸 함께 식사하자고 잡았다. 그는 수줍은 듯 주춤하더니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라며 좋아한다. 천천히 음식 맛을 보던 그가 처음으로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25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어린 자녀들이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가게 되어 아내도 함께 떠났단다. 처음엔 학교만 마치고 돌아오기로 하였지만, 그곳 생활에 익숙해진 아내와 아이들은 아예 미국시민이 되어 눌러앉아 버렸다고 하였다. 몇 년 동안은 서로 오가며 가족과 따뜻한 사랑과 정을 나눴지만, 점차 소원해져 현재는 일이 년에 한 번 정도 만난다고 한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얼마 전 딸이 결혼하였는데 아버지인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알아서 하는데 굳이 낄 필요가 없었다며 쓸쓸하게 웃는다. 그럼 이제 부인은 한국으로 돌아오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흔든다. 본인도 부인과 합치면 불편할 것 같아 그냥 이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해외 조기유학이 증가하였다. 그 이유는 삐뚤어진 교육관과 더 나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성공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만 유학을 보냈으나 부적응, 탈선의 문제가 생겨 부모 중 한 명, 특히 어머니가 함께 따라가 생활하게 되면서 기러기 가족이 생겨났다. 이들은 자녀의 교육문제 및 욕구를 충족시키는 반면 가족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아내는 아이들의 양육 담당과 보호자 권리로 남편에게 지속해서 경제적 요구를 하게 된다. 남편의 부재로 아버지의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전통적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간소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녀 교육을 마친 후에도 한국에 돌아오기를 꺼린다고 한다. 남편은 강하고 주도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런 고정관념으로 말미암아 기러기 아빠들은 홀로 남아 아내의 체재비와 생활비, 자녀 교육비를 대느라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남편은 가족에게 봉사와 희생을 강요당함으로써 자기 계발은커녕 사는 것에 급급하여 피폐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가족으로부터 당연히 누리고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 역할로부터 제외된 남성은 심각한 불평등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들 또한 부모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여성과 남성의 역할, 가치관을 배우지 못해 정신적, 정서적 문제가 생기고 사회에서도 올바른 성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과거 우리나라는 봉건주의적 제도하에서 여성이 차별을 받아왔다. 서구문화가 들어오고 남녀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지고 역할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유교적 사상에 길든 우리들의 의식 전환이 쉽지 않아 남녀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는 여성의 차별적 대우에 대한 피해의식이 두드러져 남성이 가해자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남성도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힘든 일을 해야 하고,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의식은 성차별의 한 예이다.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올바른 해결 방안을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조기유학이 감소하고 있다지만 아직 올바른 교육정책이 마련되지 않아 또다시 한국을 회피하듯 떠나는 조기유학생들이 증가할까 염려가 된다. 올바른 양성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거주하며 남녀의 역할을 배워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평등한 태도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똑같은 것을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다른 특성, 성차와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잉태하고 낳을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면 남성은 여성이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 있고, 남성에게 적합한 일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양성평등은 남성, 여성이라는 특정한 성에 국한된 사고를 벗어나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충북여성문인협회 양성평등 수상작(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