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침입자
이 승 애
저녁상을 물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매캐한 담배 냄새가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왔다. 어머니께선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하셨다. 몇 해 전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겨 시술을 받고 인공심장박동기에 의지해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담배 냄새만 맡으면 심한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하신다. 황급히 창문을 닫았지만, 이미 침입한 담배 냄새를 막을 순 없었다. 오늘은 날씨가 궂어 환기가 잘되지 않는데다 위 아래층 아저씨들이 동시에 담배를 피워대는지 매캐한 냄새가 평소보다 심하게 느껴졌다. 스피커에선 층간 소음, 흡연에 대한 예의범절을 방송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 소리에 벽이 되어버린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기침을 멈춘 어머니께서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당장 쫓아가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전하라 하셨다.
나는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다가 멈추어 섰다. 생면부지인 그들에게 불쑥 찾아가 집안에서의 흡연을 삼가라고 말하기가 불편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 간에 오해가 생겨 다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였다. 카페에서 친구들과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는데 대학생인 듯한 여성 네댓 명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들은 미끈한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동시에 뽀얀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가슴을 조여 왔다. 참다못한 친구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가 담배는 밖에서 피우고 오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눈을 치켜뜨고 “에잇 ○○! 아줌마가 싫으면 나가요.” 하며 망발을 해댔다. 뭐 싼 놈이 성낸다고 역한 냄새를 피운 놈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부모 같은 사람들을 내쫓는 꼴이라니. 친구는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몇몇 남학생들이 화장실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곤 하였다. 선생님들이 교내 흡연을 근절시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처음엔 흡연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용서를 빌며 다신 피우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그들의 행태는 뻔뻔스럽고 반항적인 태도로 변해갔다. 간혹 여학생이 흡연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불끈하여 위협을 하는가 하면 나약한 동급생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담배라는 매체를 통해 그들은 작은 비리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청소년 흡연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정서적, 사회적 문제로 연결된다. 청소년의 흡연은 비행의 출발이다. 담배의 해로운 물질이 두뇌활동에 영향을 끼쳐 학습능력 장애를 유발하는가 하면 사고능력과 의욕을 감퇴시킨다. 숨어서 담배 피우던 청소년이 나이가 들면 이웃을 배려할 줄 모른다. 얼마 전 우리 이웃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꽁초를 투척해 지나가던 여학생의 머리에 떨어져 다치는 일이 있었다.
흡연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간접흡연의 피해에 대해 아무리 강조하여도 대부분 흡연자는 나만 피해를 보지 않으면 된다는 의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병폐적인 사고는 사회를 점점 황폐하게 하고 인간 본래의 향기를 없애는 악취의 근원이 된다.
사회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는 서로 간의 소통을 마비시키고 비인간화 세상을 초래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몹쓸 말을 들을까 두려워 아직 앳된 여자아이들이 흡연하는 모습을 방관하고 되돌아왔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눈감아버린 것이다. 성숙한 어른이었다면 그른 행동을 보고 눈감고 피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옳다면 정당하게 맞설 줄 아는 정의로움을 갖는 것이 어쩜 이 병든 사회를 해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위 아래층에서 품어대는 담배 연기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우리 집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무언의 폭력이 젖은 밤을 파고든다. 내일은 용기를 내어 정중히 집안에서의 흡연을 금지해달라고 부탁해보련다.
201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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