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겪으며
고통을 겪으며
이 승 애
집을 나서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오늘 하루의 계획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랐다. 직장에 도착해 일을 하는데도 불안감은 줄지 않는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승강기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3층을 지나 중간쯤 올라갔을 때였다. 발을 옮기려는 순간 어지럼증이 일더니 몸뚱이가 허공을 차고 떨어지면서 계단 위를 굴렀다. 정신을 차려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꼼짝을 할 수 없다. 차가운 대리석 위에 아무렇게나 내동이 쳐진 나를 구해줄 사람은 쉬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른팔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며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놀랍게도 이웃 사람이 나타났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팔꿈치 부분이 부러졌단다. 곧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팔을 쓸 수 없게 된단다. 야생마처럼 뛰며 자신만만했던 팔이 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수술을 하기 위해 큰 병원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나의 절박함과는 달리 의사는 느긋하게 수술날짜를 잡았다. 밤새 앓고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붓고 나서야 수술실로 옮겨졌다.
두 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쳤지만 부위가 묘하여 제대로 붙을 줄 모른단다. 팔의 통증보다 마음의 통증이 더 심하다. 홀로 계신 어머니 걱정에 잠시도 편히 쉴 수 없으니 회복도 늦어졌다. 이 꼴이 안됐는지 지인과 친구들이 연신 맛있는 음식을 나르고 기석(氣石)을 붙여주느라 매일 들락거렸다. 덕분에 나는 재수술을 면하고 서서히 회복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요한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나니 모든 것이 편치 않다. 평소 오른 손을 사용하던 것들을 왼 손으로 하자니 어설프고 힘겨워 곧 지치고 만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나는 이제껏 자유롭게 사용하던 오른손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묵묵히 견디어 왔던가. 일을 하다 상처가 나고 음식을 하다 불에 데어도 불평 없이 맡겨진 일에 충실했던 손이 새삼 고맙고 기특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라고 숙련시키고 명령만 했지 아끼고 보듬어주지는 않았다. 팔목이 투덜거리며 쉬기를 요구해도 모르는 척 외면했었다. 언젠가는 견디다 못한 팔목이 밤새 신음소리 내며 앓았지만 파스 한 장 얹어주고는 끝이었다. 헌데 이제는 주인의 잘못으로 부러지고 퉁퉁 부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서투른 왼손의 행동에 의지해야하니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겠는가.
나는 그동안 너무 서두르고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만 썼지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능력과 상황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주위에서 걱정을 할 때에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내가 선 자리는 고려하지 않았다. 마치 슈퍼우먼이라도 된 듯 밤낮 가리지 않고 설쳐댔으니 어찌 몸이 배겨났겠는가. 조금씩 쇠약의 기미를 보일 때 잠시 멈추는 지혜를 터득했어야했다. 무작정 목표만 따르다 건강을 잃었고 결국엔 다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음의 결과란 말인가. 그동안 다녔던 직장도, 한 집안의 가장 역할도 모두 내려놓아야하니 마음은 늘 불편하고 어둡기만 하다. 건강해지면 다시는 서두르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느림의 여유를 배우고 현실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리라.
고통은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이제껏 자만심으로 살았던 시간을 뉘우치게 하고 또 다른 방식의 삶을 배우게 한다. 오늘 이 고통은 나의 스승이 되어 빙긋이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