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2015. 1. 26. 22:22

몸살을 앓으면서

 

 

오빠의 병수발에 집안일, 몇 차례의 손님 대접에 지친 몸이 항변하기 시작하였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두통이 들락거렸다. 그래도 일을 놓을 수 없어 이틀을 더 버텼더니 밤새 온 몸 구석구석 안 아픈데 없고 기침은 쉴 새 없이 나왔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가도 차게만 느껴지고 옷을 겹겹이 입어도 등이 시려 견딜 수 가 없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바이러스 덩어리는 임자 만났다 싶었는지 아예 똬리를 틀고 고통의 강도를 높였다. 난 결국 패잔병이 되어 자리에 몸져눕고 말았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널브러진 딸의 처참한 꼴에 어머니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에 퉁퉁 부은 무릎의 통증을 참아가며 내 머리에 찬물찜질에 뜻뜻한 보리차를 대령하며 밤을 새웠다. 그 엄청난 사랑의 수발에도 나는 염치없게도 밤새 아이고를 연신 토해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파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다. 어머니가 아무리 채근을 해도 옴짝달싹 할 수 없으니 그저 구들장을 짊어지고아이고 죽네만찾을 수밖에…….

사나흘을 더 심하게 앓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비칠거리며 걸을 수 있었을 때 병수발을 들던 어머니도 몸살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연세가 높으시니 나보다 더 끙끙 소리를 내시며 앓으셨다. 두 모녀가 한 자리에 누워 앓고 있을 수 만 없어 간신히 몸을 추스려 시원한 무국을 끊였다. 모녀는 눈물겨운 위로를 주고받으며 겨우 무국 한 사발 비우곤 병원으로 향하였다. 의사선생님은 이 꼴이 되도록 무엇했느냐며 호통을 치며 며칠 착실하게 치료받을 것을 명하였다.

입은 부르트고 목은 부어 먹지 못하고 말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 되니 새삼 내 신체 기관의 소중함과 역할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절제력을 잃은 입에선 정제되지 말들이 쏟아져 나와 남을 아프게 하였으리라. 눈은 조심성을 잃어 보이는 대로 탐하고 즐기며 살았다. 분별력을 잃은 귀는 옳고 그름을 떠나 닥치는 대로 들음으로써 사고마저 흐려지지 않았던가. 바이러스와 씨름을 하면서 누워있는 동안 더럽혀지고 퇴색한 부분을 닦아낸다. 외적인 소음에 더 많이 귀 기울이고 숨차게 바쁜 시간을 달리듯 살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는 얼마나 많이 소홀히 하였는지 깊은 반성을 해본다. 떠벌이며 호들갑을 떨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기도 하고, 무엇이 된 듯 자랑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무디어지고 녹슬어 있었을까? 굳어진 고정관념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정화되고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나보다. 누워있는 동안 느긋한 기다림을 배우고, 참을성을 배운다. 내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을 다시 배운다. 고통의 밭에서 거두어들인 알곡들은 내 마음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잃어버린 길을 다시 가게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