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2015. 1. 7. 23:28

 

마음의 안경

 

모처럼 콧바람을 쐬는 중이다. 바슬거리는 모래 언덕에 앉아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본다. 푸른 물결이 남실남실 다가와 모래톱에 입맞춤하고는 줄행랑치기를 반복한다. 낮은 소리로 속살대는 해조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머니 얼굴에서도 웃음꽃이 지지 않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선글라스로 인해 둘이 티격태격했다. 쨍한 햇살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자 선글라스를 썼다. 어머니의 눈꼬리가 샐쭉 올라갔다. 당장 벗으라고 다그쳤다. 기어이 쓰려는 나와 못 쓰게 하려는 어머니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어머니는 색안경을 쓰면 건방져 보이고 건달 같아 보일 뿐만 아니라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보여서 싫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지독한 편견과 맞서다 휑 돌아서고는 내 얼굴에 걸쳐 있는 그 시건방진 선글라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늘이 심통을 부렸다. 아름답게 노을 지던 서쪽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마른번개가 쳤다. 곧이어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빗줄기가 차에 부딪힐 때마다 수천만 개 콩 튀기는 소리를 냈다. 흙탕물로 물바다가 된 도로는 끊임없이 물갈래를 쳤다. 나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전진이 어려워진 나는 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우고 말았다.

지나가던 차들이 놀라서 클락슨을 계속 눌러대며 고함을 질렀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나는 갓길로 차를 옮기려고 애를 썼지만, 머릿속이 하얘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손을 잡았다.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었다. 이 급박한 시간 내내 어머니는 기도드리고 있었다. 나도 슬그머니 묵주를 꺼내 들었다.

극에 달했던 두려움이 한풀 꺾였다. 위기를 모면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오가던 차들도 뜸해져 구조요청은 더욱 어려워진 듯했다. 어둠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우리는 도로에 갇혀 고립무원이 되어갔다.

시동을 걸었다. 여전히 앞이 가려 전진할 수 없었다. 다시 시동을 끄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순간 내 얼굴에 천연덕스럽게 걸쳐 있던 안경이 툭 하고 떨어졌다. 맙소사! 선글라스였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어버리자, 그간 분간할 수 없었던 도로의 윤곽과 차선이 보이고, 주변 모습도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오늘 밤 색안경 하나로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이런 사달까지 나지는 않았을 텐데. 다행히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만약에 사람을 보는 눈이 이랬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을까.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고 보니 내가 그동안 어떤 색안경을 쓰고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났다. 내가 정작 그 사람들의 진면목을 알아보기나 한 것인지. 그들은 또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서로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는 아니었을까.

누구나 자신이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의 잣대로 본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색안경이라고 같을까. 모양도 색깔도 모두 다르다 보니 서로의 본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거기다 우월감이 강해지거나 배알이 꼬이게 되면 색깔이 덧칠해져 내 소리는 더 커지게 되고 서로 쓴소리로 번지다 결국 견고한 둑을 쌓고 고개를 돌리고 만다.

사람은 자신이 보이는 대로 믿는다. 나는 저게 동그라미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세모라고 하고, 나는 꽃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는 열매라고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내 눈에 씌워진 콩깍지 하나 떼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비 오는 날, 그날처럼 내가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일 거다. 길은길이요,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라는 것을.

 

한국수필 제236호(2014년 10월호)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