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2015. 1. 7. 22:53

사라진 화분

 

 

고즈넉한 시간, 현관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어둠을 가른다. 예기치 않은 소음에 놀라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데 어머니께서 손목을 잡으셨다.

가만있거라. 무엇이 필요한가 보지.”

어머니께서 말리는 바람에 억지로 주저앉기는 하였지만, 배설물을 깔고 앉은 사람처럼 영 께름칙하였다. 소란이 가신 복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이른 아침 어젯밤 일이 궁금하여 사고 현장을 탐색하듯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뿔싸, 의젓하게 앉아있던 백자 화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떤 사람이 오가며 눈도장 찍어 두었다가 야심한 밤을 노려 가져가 버린 것이다. 내 움직임을 따라 밖을 내다보시던 어머니께선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화분이 없어진 게로구나. 어젯밤 마주치지 않고 가져갔으니 잘된 일이다. 혹여라도 네가 아는 사람이었으면 어쩔 뻔했니. 어서 문 닫고 들어오너라.”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긴 하였지만, 마음은 영 불편하였다. 어쩌다 마주한 물건이 마음에 들었으면 주인에게 얻기를 청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생각이 가셔지질 않는다.

길가 집도 아니고 아파트 고층에 떡 하니 버티고 있던 우리 집 물건이 왜 남의 손을 탔는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온종일 요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옆집을 오가던 친구나 친척이 가져간 걸까? 아니면 아파트 주민 중 누가 가져갔을까?’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마음을 오염시켜 급기야는 병적인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옹졸한 마음이 오그라 붙을 대로 붙은 뒤에야에라 모르겠다. 누군가 아름다운 꽃을 가꾸고 싶은 게지.’체념하듯 던져버리니 그때야 평화가 찾아왔다.

나도 언젠가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 오뚝이 서 있는 몇 개의 화분에 눈독을 들인

적이 있다. 달빛을 받아 고아한 빛을 내던 꽃 화분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마음 한쪽은 네 물건이 아니니 탐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이르고 한쪽 마음은 가져가도 된다고 부추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화단 주변을 서성이는데 그 모습이 수상했는지 경비아저씨가 플래시를 휘두르며 다가왔다.

아줌마! 뭣 하세요? 늦은 시간에.”

예 전그저저 화분이 버려진 게 아닌가 하고요.”

저 화분요? 아니에요. 102동 사시는 분이 햇볕 받으라고 내놓으신 거예요.”

경비 아저씨는 희한한 여자 다 보겠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현행범으로 적발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벌게져서 황망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좋은 물건을 보면 탐하는 마음이 슬쩍 오르고, 보잘것없는 물건 앞에선 눈길을 거둔다.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와 같아 좋은 사람,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곁으로 다가가 알짱대며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내 삶의 둘레에서 멀리 떼어 놓고자 안간힘을 쓴다.

만약에 화분이 볼품이 없었다면 내 것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일지 않았을 것이다. 어젯밤 우리 집 화분을 가져간 사람은 그 화분이 가진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물건에 대한 욕심보다는 화분이 담고 있는 멋스러움을 탐했으리라. 그러니 그를 도둑으로 몰거나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남의 물건을 탐했으되 아름다움에 반한 행동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언제가 기르던 꽃나무에서 몽실몽실 꽃이 피어오르면 한 번쯤은 우리 집을 떠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겠는가.

 

 

201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