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창작수필(신호등)

버려진 가구 앞에서

이승애 2015. 1. 7. 22:48

버려진 가구 앞에서

 

 

이웃에 사는 형님이 부탁할 게 있다고 하여 현관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목련 나무엔 손가락만 한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맺혀있고, 복숭아꽃도 몽글몽글 맺혀 봄을 재촉한다.

이곳저곳 터져 나오는 생명의 신비에 가슴은 기쁨으로 팽창한다. 내친김에 발걸음을 옆 동 정원으로 옮기려는데 초록색 파쇄기 차량이 둔중한 몸을 기우뚱거리며 쓰레기장 앞에 멈추어 섰다. 차량 양쪽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뛰어내리는가 싶더니 찬 이슬에 축축하게 젖은 가구들을 기계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둔탁하게 돌아가는 기계음과 빠지직 비명을 지르는 가구들의 처절한 소리가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며칠 전 203호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가구들이 생활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파쇄기 차량은 마지막으로 상아색 소파를 질겅이며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가 버렸다.

현대인은 쉽게 자신의 삶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사람 관계든 물건이든 소용이 없어지면 버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현상은 물질이 풍요로워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환경이 개선되어 편리해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이웃은 정다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이겨야 할 경쟁상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가구가 태어나기 위해선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 사람의 세계로 들어와 상호관계를 맺고, 생명을 얻게 된다. 집안 어디에서건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그 충성심은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다. 그러나 주인은 필요성이 없어지면 그 존재성을 무시하고 만다.

현대인은 차츰 정을 잃어 가고 있다. 물건을 쉽게 버리듯 사람 관계도 쉽게 변화기가 일쑤다. 좋은 관계를 맺고 살다가도 작은 잘못이나 상처 앞에선 쉽게 끊어지고 만다. 또한, 자신과 삶의 방향이 다르거나 이득이 없으면 관계조차 맺으려 하지 않는다. 점점 정을 잃어가는 세상은라는 이기적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얼마 전에 친구가 다녀갔는데 부모님과 오래도록 함께한 집과 물건들을 잃고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곧이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오빠는 가족과 상의 없이 부모님께서 평생 살아오신 집이며, 가구와 물건들을 처분해 버렸단다. 그것도 본인이 손수 한 일이 아니라 고물상을 통해 정리해 버렸다고 하였다. 가족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내다가 사십구재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유품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 버린 상황이니 그 애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오빠만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흔적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에게 남겨진 그 모든 것이 짐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을 처분하면서 또 하나의 못을 가슴에 박았는지도 모른다.

파쇄기에 의해 소리 지르며 사라져간 가구들은 내 안에 들어와 오래도록 머문다. 아무리 새 가구라도 쓰레기장에 버려지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로지 파쇄기 차량만이 잘게 부숴 수거해 갈 뿐이다. 그것은 다시 재활용가구나 물건으로 만들어지겠지만, 그 원형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파트 주민이 마음을 모아 아나바다운동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삭막한 마음도 녹아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