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2018. 4. 17. 06:36

갈대

 

이 승 애

 

무심천 가녘이 연초록빛 풀잎 향연에 함뿍 부풀어 올랐다. 그 감흥에 나도 도취되어 도란대는 내를 따라 한가로이 걸어본다. 가슴이 애초롬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물결치는 푸른 생명 위로 뻘쭘하게 서 있는 묵은 갈대숲이 발목을 잡는다. 넉장거리한 어미의 갈댓잎 사이로 어린 갈대가 봄바람에 난출난출 춤을 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미는 무엇이 그리 아쉬운지 긴 목을 흔들며 딴청이다. 아직 내려놓지 못한 욕망이라도 있는 것일까. 주변은 새 생명으로 넘실대는데 저 혼자만 다가오는 봄을 본숭만숭한다.

갈대의 치기가 아니꼬운지 소소리바람이 매섭게 치고 달아난다. 갈대가 휘청 누웠다 일어난다. 전전긍긍하면서도 물러설 줄 모르는 저 아둔함이 인간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묵은 갈대 하나를 꺾어 본다. 맨손으론 어림없다. 황혼이 되어서도 끈질기게 잡고 있는 강한 생명력에 기겁하고 물러선다. 악착같이 움켜잡고 있는 저 강한 집착에 소름이 돋는다.

많은 사람은 갈대의 유연성을 예찬하고 인생에 빗대 말하지만, 나는 오늘 검게 삭아버린 갈대에서 내려놓지 못한 인간의 욕망 덩어리를 본다.

이십여 년 전 어느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주 잘 생긴 진돗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십여 명의 회원은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단체장님은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두 그룹을 나눠 서로의 의견을 내어 적당한 이름을 지어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단체장의 의도와는 달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두 그룹은 각자 그럴싸한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들 팀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 팀을 공격하였다. 이 치열한 싸움은 규칙과 규율까지 깨뜨려가며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결과는 뻔했다. 마치 서로 드잡이라도 한 것처럼 씩씩댔지만, 정해진 이름은 없었다.

강아지 이름이 무에가 대수라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다투었을까? 그것은 무조건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두 팀은 단체장의 중개로 숙지근해졌지만, 몇 날 며칠 동안 자기의 뜻을 관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옴씹으며 상대의 심사를 긁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갈개발 같은 사람, 거통 같은 사람, 윤똑똑이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주변을 어지럽히거나 고통을 준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달리 고고하다거나 순박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이러한 면을 지니고 있어 주위 사람에게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다.

꽃이 지는 이유는 참된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필 때와 질 때를 아는 현명함이야말로 최고의 덕이 아닐까 싶다. 갈대가 자신의 찬란했던 순간을 간직한 채 스러졌더라면 어린 갈대는 더욱 빛났으리라.

해를 묵은 갈대는 여전히 제 세상인 양 봄을 휘저으며 해찰을 떨고 있다. 어린 것은 초록 치마를 펼쳐 제 어미를 감싸려는 듯 힘껏 팔을 뻗지만, 늙은 어미는 손을 잡아 줄 의향이 없다. 꿈과 욕망이 부딪쳐 봄이 우지끈 금이 간다. 저 묵은 갈대는 돈키호테처럼 제 흥에 겨워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듯하여 가슴이 뻐근해진다.

순리를 거스르는 어미의 날개 아래서 꿋꿋이 제 것을 피워내는 어린 갈대의 꿈이 활짝 펼쳐지도록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본다.

 

    2018년 6월  세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