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와 순이
사랑이와 순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명덕산 기슭 작은 마을에 사랑이와 순이가 살았어요. 사랑이와 순이는 늘 함께였지요. 따뜻한 봄날이면 논두렁 밭두렁을 누비며 쑥도 뜯고, 냉이도 캤어요. 여름이면 냇가에 가 온종일 물장구를 치며 놀았지요. 두 살 위인 순이는 사랑이가 귀찮아질 때면, 곧잘 골탕을 먹였지만, 사랑이는 순이와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순이 어머니는 잿물을 만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바빴답니다. 예전엔 잿물을 만들어 비누로 사용했답니다. 순이 어머니는 깨끗한 짚을 태워 시루에 안쳤답니다. 물을 부어 흘러내리면 그 물을 받아 비누를 만들어 빨래했거든요. 순이 어머니는 들에 일하러 가면서 순이에게 일렀어요.
“순이야! 부엌에 있는 단지엔 손대지 말아라.”
“왜요? 그게 뭔데요?”
“그것은 잿물이란다. 위험하니까 손대면 안 된단다.”
순이는 혼자 남게 되자 부엌으로 갔어요. 예쁘장한 단지 두 개가 오누이처럼 놓여있었지요. 순이는 단지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예쁘장한 단지에 담긴 물은 아무리 보아도 위험해 보이지 않았어요. 순이는 손가락을 넣어 살짝 만져보았지요. 손끝이 미끈미끈 한 느낌이 있었지만, 엄마가 말씀하신 것처럼 위험해 보이진 않았어요.
순이는 작은 옹기그릇에 잿물을 조금 담아서 밖으로 나온 뒤 마루에 걸터앉았어요. 순이는 그 물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했어요. 먹어보면 어떨까?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어요.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했으니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순이는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생각했어요. 그때였어요. 옆집 사는 사랑이가 놀러 왔어요.
“순이야! 노올자. 순이야!”
“싫어. 안 놀 거야. 나는 지금 바쁘단 말이야.”
“순이야! 그러지 말고 노올자. 응?”
사랑이는 순이와 놀고 싶어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답니다.
“순이야! 나랑 놀면 이거 줄게.”
사랑이는 예쁜 분홍 핀을 내밀었어요. 순이가 평소에 탐을 내던 핀이었지요. 순이는 분홍 핀을 보자 너무나 갖고 싶어졌어요.
“정말? 너랑 놀아주면 그 핀 나 줄 거야?”
“응. 나랑 놀아주면 이 핀 줄 거야.”
순이는 재빠르게 사랑이 손에 놓인 핀을 집어 들며 말했어요.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응. 네가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할 거야.”
사랑이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그러면 뒷마당에 가서 살구 주워 와.”
순이는 명령하듯 사랑이에게 말했어요. 사랑이는 뒷마당에 떨어져 있는 살구 몇 알을 주워와 순이 옆에 앉았어요. 순이는 그릇을 내밀며 말했어요.
“이 그릇에 있는 물에 살구를 담갔다가 꺼내 먹어.”
“그게 뭔데?”
“응. 이건 좋은 물이야.”
사랑이는 선뜩 살구를 그 그릇에 담글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순이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사랑이 눈에는 순이가 다른 때와 달라 보였어요. 순이는 그런 사랑이가 못마땅했어요. 엄마가 위험하다고 한 이 요상한 물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사랑이가 먹어본 뒤에 본인도 먹어보려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사랑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안달이 났어요. 그래서 순이는 사랑이에게 다그치며 말을 했지요.
“사랑아, 너 나랑 놀고 싶어? 안 놀고 싶어?”
“놀고 싶어.”
“그러면 어서 먹어.”
순이는 살구에 잿물을 묻혀 사랑이에게 주었어요.
“싫어. 안 먹을래.”
사랑이는 고개를 흔들며 순이를 빤히 쳐다보았답니다.
“이거 안 먹으면 너랑 안 놀 거야.”
“그래도 안 먹을래.”
“그럼 너네 집으로 가.”
순이는 뽀로통해져 벌떡 일어났어요. 사랑이는 순이가 놀지 않겠다는 말에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순이야. 머 먹을게.”
사랑이는 억지로 살구를 먹기 시작했어요. 사랑이는 또 하나의 살구를 옹기그릇에 담긴 물에 적셔 사랑이에게 먹으라고 했어요.
“사랑이 이것도 먹어.”
“안 먹을래. 이상하단 말이야. 정말 너무 이상해.”
“이거 하나만 더 먹으면 놀아 줄 거야.”
“싫어. 안 먹을 거야.”
사랑이는 입을 두 손으로 꼭 막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어요. 순이는 화를 내며 사랑이 머리를 꽁꽁 쥐어박으며 억지로 먹이려고 했어요. 그때였어요. 시장에 가셨던 사랑이 어머니가 돌아오셨어요.
“순이야! 그게 뭐니? 왜 사랑이를 때리면서 먹으라고 하는 거야?”
사랑이는 어머니를 보자 품에 안기며 말했어요.
“엄마! 나 집에 갈래. 순이가 먹기 싫은 걸 자꾸만 먹으라고 해.”
사랑이 어머니는 순이 손에 든 살구를 빼앗았어요. 순이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어요.
“아……. 아니에요. 사랑이한테 살구 먹으라고 했어요.”
“그럼 네 손에 든 옹기그릇 담긴 물은 뭐니?”
“그냥 물이에요. 씻어서 먹으라고 했어요.”
순이는 사랑이 어머니의 매서운 눈을 보자 온몸이 떨려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지요. 사랑이 어머니는 몹시 화가 나서 사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온 사랑 이는 배가 아프다고 엉엉 울어 댔어요.
“엄마! 배 아파.”
“배가 아파? 어떻게 아파?”
“그냥 아파. 엄마 많이 아파.”
사랑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뒹굴며 울어댔어요. 그리고는 토하기 시작했어요. 사랑이 어머니는 순이네 집으로 달려갔어요.
“순이야! 순이야!”
사랑이 어머니가 큰소리로 순이를 부르자 들에서 돌아온 순이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어요.
“왜 그러세요? 우리 순이는 왜 찾으세요?
“아, 아주머니 저기 저 옹기그릇에 담긴 물은 뭐예요?”
“저거요? 글쎄요. 순이야! 순이야! 저 옹기그릇에 담긴 물은 무슨 물이니?”
순이는 죄지은 사람처럼 잔뜩 웅크리고 나와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재…….잿물이에요.”
순이는 그 말을 하고는 재빠르게 방안으로 도망쳐버렸답니다.
“아! 어쩌면 좋아요. 순이가 우리 사랑이한테 아까 저 그릇에 담긴 잿물에 살구를 찍어서 먹이는 걸 보았는데 집에 가서 계속 배 아프다고 울고 토하고 그러네요.”
“아니 사랑이 어머니! 우리 순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걸 사랑이한테 먹이겠어요? 사랑이 어머니는 별 트집을 다 잡는군요.”
“아니에요. 제가 아까 순이가 우리 사랑이에게 먹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답니다. 순이에게 물어보세요.”
순이 어머니는 순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우겨댔어요. 한참 옥신각신하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사랑이 어머니는 울면서 큰 소리로 이야기 했어요.
“순이가 우리 사랑이 한테 살구에 잿물을 묻혀 먹여 병이 났답니다. 그런데 순이 어머니는 끝까지 아니라고 우겨대시네요.”
솔이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순이 어머니를 나무랐어요.
“사랑이 어머니가 보셨다니까 순이에게 물어보세요. 원 세상에, 조그만 계집애가 무섭기도 하지. 어떻게 친구에게 잿물을 먹여요.”
사람들도 큰소리로 순이가 나쁜 아이라고 나무랐어요. 순이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순이를 불렀어요.
“순이야! 순이야! 어서 나와 보아라.”
순이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마지못해 나온 순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답니다.
“순이야! 너 사랑이한테 잿물 먹였니?”
“아니.”
“솔직히 말해봐 이년아. 사랑이가 네가 먹인 잿물 때문에 배가 아파 운대잖여.”
“몰라. 안 먹였어.”
순이가 시치미를 떼자 사랑이 어머니는 몹시 화가 나서 순이를 째려보며 말했어요.
“순이야! 너 아까 사랑이에게 잿물에 적신 살구 먹이려는 걸 봤단다. 억지로 먹이려고 때렸잖니? 사랑이도 네가 먹여서 하나 먹었다고 하더라.”
순이 어머니는 순이 등을 때리며 말했어요.
“이년아 왜 그랬어. 왜.”
“…….”
순이는 더는 말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순이가 못된 아이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어요. 그때야 순이 어머니도 마지못해 사랑이 어머니께 잘못했다고 말했어요.
“아이구 죄송해서 어째유. 우리 순이가 사랑이에게 못할 짓을 했네유.”
사랑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사랑이는 잿물을 먹은 탓에 한 달이나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사랑이는 순이를 원망하지 않고 매일매일 순이를 기다렸어요.
“엄마! 순이 안 왔어요?”
“사랑아! 이제는 순이랑 놀지 말아라. 순이 때문에 큰일 날 뻔했잖니.”
사랑이 어머니는 순이 이야기만 나와도 부르르 떨며 사랑이를 말렸어요. 그래도 사랑이는 순이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어요. 사랑이는 언제나 똑같은 말로 어머니를 설득했어요.
“아니야. 순이가 나랑 놀아 주려고 그런 거야.”
“그래도 엄마는 순이랑 어울리는 것이 싫단다.”
“엄마! 순이는 착한 친구야. 나 다 나으면 순이네 집에 놀러 갈 거야.”
“그건 안 된다. 이제 순이네 집에는 가지 말거라.”
“순이는 사랑이 친구야.”
“순이는 나쁜 친구야. 절대로 함께 놀아서는 안 된다.”
사랑이 어머니는 다시는 순이와 놀지 못하도록 단단히 타일렀지요. 하지만 사랑이는 엉엉 울면서 말했어요.
“엄마 미워. 순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순이랑 놀고 싶단 말이야.”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였어요. 위험한 순이와 사랑이가 어울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순 없었어요. 하지만 사랑이가 하도 보채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순이를 찾아갔어요.
“순이야! 사랑이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단다. 언제 다녀가지 않을래?”
순이는 엉엉 울며 말했어요.
“사랑이는 어때요? 제가 잘못했어요. 저 때문에 사랑이가 죽을 뻔했어요.”
사랑이 어머니는 순이를 꼭 껴안으며 말했지요,
“사랑이는 많이 좋아졌단다. 이제부터는 잘 지내야 한단다. 알았지?”
“네. 사랑이랑 사이좋게 지낼 거예요. 다시는 사랑이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순이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어요. 다음날이었어요. 순이는 들꽃을 한 아름 꺾어선 사랑이를 찾아왔어요.
“사랑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괜찮아. 너는 내 친구잖아.”
“고마워. 사랑아.”
사랑이와 순이는 두 손을 잡고 활짝 웃었어요.